비가 오면 운동장 냄새가 창문 틈으로 먼저 들어오고 우린 말없이 젖은 복도를 지나 괜히 느리게 걸었지 매미 소리는 너무 가까워서 네 목소리도 조금 멀어졌고 나는 묻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신발 끝만 보고 있었어 그날의 나는 내 마음보다 키가 작아서 좋아하는 일도 자꾸만 틀리게 배웠어 여름은 자꾸만 우리를 다른 쪽으로 데려가 젖은 셔츠가 마르기도 전에 우린 조금 달라져 있었지 너를 부르려다 그냥 빗소리에 섞어버린 말 아직도 가끔 내 안에서 조용히 젖어 있어 수업 종이 울린 뒤에도 창밖은 계속 파랗게 흔들렸고 너는 웃다가 갑자기 조용해져 나는 그게 무서웠어 별일 아닌 말에 마음이 다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돌아서고 집에 와서는 한참을 젖은 양말처럼 마음을 벗어놨어 그때의 우린 서로를 잘 몰랐던 게 아니라 자기 마음 하나도 제대로 읽지 못했던 거야 여름은 자꾸만 우리를 먼 쪽으로 밀어내 매미 소리가 잠잠해질 때쯤 이름 하나가 계절이 됐지 너를 미워하려다 그것도 잘 안 돼서 그만둔 밤 작은 창문에 비가 오래도록 붙어 있었어 우산이 조금 기울던 순간 네 어깨가 먼저 젖었고 나는 그걸 알고도 모른 척 걷고 싶었어 우린 끝을 말하기엔 어렸고 영원을 믿기엔 너무 빨랐어 그래서 그 여름은 아직도 반쯤 비가 와 여름은 자꾸만 우리를 지나간 애들로 만들어 한때는 전부였던 마음도 조용히 이름을 바꾸지 너를 좋아했던 일은 이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매미가 우는 날이면 잠깐, 나를 지나가 비가 그치면 우린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햇빛 속으로 걸어가겠지 조금 젖은 채로 ------ Source: genie Romanised by JHnimm