퇴근해 문을 열어 보니
문 앞에 작은 상자 하나
보낸 사람 이름 아래
익숙한 글씨로 쓴 주소
테이프를 천천히 뜯자
익숙한 냄새가 났고
반찬통 사이 쪽지엔
밥은 꼭 챙겨 먹으렴
냉장고 한 칸을 비우고
한참 그대로 서 있었어
나는 잘 지내는 중이야
잘 지내는 법은 몰라도
아침이면 옷을 입고
늦지 않게 집을 나서
별일 없다는 말 뒤로
작은 일들을 넘기며
걱정하지 말란 말도
이젠 제법 잘하니까
국이 데워지는 동안
엄마에게 전화를 걸어
회사 생활 어떠냐는
물음에 먼저 웃었어
밥도 잘 먹고 잠도 자
주말엔 청소도 했어
하지 못한 말 몇 개는
식탁 위에 남겨 뒀어
통화가 끝난 부엌에는
초침 소리만 남았어
나는 잘 지내는 중이야
가끔 이유 없이 지쳐도
밀린 빨래를 돌리고
내일 입을 옷을 꺼내
별일 없다는 말 뒤로
작은 일들을 견디며
걱정하지 말란 말도
이젠 제법 잘하니까
어릴 적 생각한 어른은
모든 답을 알 줄 알았어
모르는 날이 더 많아도
불을 끄고 문을 잠가
내일 아침 눈을 뜨면
다시 하루를 시작해
그게 어른이 되는 일일까
혼자 가만히 생각해
나는 잘 지내고 있을게
서툰 날이 더 많겠지만
보내준 반찬 다 먹으면
빈 통은 깨끗이 씻어 둘게
별일 없다는 말 대신
오늘 있었던 일을 말할게
조금 힘들었다는 말도
언젠가는 해볼 수 있게
불 켜진 작은 부엌에서
따뜻해진 국을 한 술 떠
남겨 둔 쪽지를 접으며
오늘을 천천히 삼켰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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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ource: genie
Romanised by JHnimm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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